챔피언 기획 해설: 그웬
어릴 적 가장 좋아한 장난감을 기억하시나요? 하얀색 곰 인형이었나요? 아니면 덩치 큰 액션 피규어였나요? 혹시 낮에는 동물 인형 왕국을 다스리지만 해가 지면 범죄에 맞서 싸우는 공주는 아니었나요?
이러한 장난감과 그로 인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어디에서 왔든, 어릴 적 환경이 어땠든, 인종, 정체성, 출신 배경이 어떻든... 누구나 지극히 아낀 장난감 하나는 있기 마련입니다. 룬테라인이라고 그러지 않으리란 법은 없겠죠?
손수 만든 공주 인형을 들고 밀밭에서 뛰어놀던 카마보르 시골 소녀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요? 아마 해가 질 때까지 금빛 들판에서 놀았겠죠. 인형을 만든 어린 소녀는 이보다 왕족다운 이름은 없다고 생각하며 인형에게 ‘그웬’이라는 이름을 지어줍니다. 인형의 드레스는 항만에 정박해 있는 카마보르 전함의 정교한 장식을 본받아 애정 어린 손길로 만들었습니다. 훗날 왕궁에 가볼 수 있기를 꿈꾸는 소녀의 마음이 인형의 모든 부분에서 드러납니다.
어쩌면 둘에게 그런 날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인형과 소녀는 바다를 건너가 왕궁 생활을 경험해보고 어쩌면, 정말 어쩌면 왕자와 결혼할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러면 셋은 언제까지나 행복하게 살겠죠.
하지만 이야기의 결말은 달랐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몰라도 그웬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나간 시대의 장난감
그웬의 이야기는 여느 챔피언의 이야기가 그렇듯 목표 설정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목표는 ‘생기발랄한 전투형 암살자 만들기’였습니다. 비에고에 이어 비슷한 정도로 진지하고 음울한 챔피언을 출시하면 리그 오브 레전드가 허무주의적 분위기에 지나치게 물들어버릴 수도 있을 테니 팀은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느낌인 기쁨을 강조하는 방향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서사 작가 마이클 “SkiptoMyLuo” 루오 님은 “리그 오브 레전드에는 럭스나 세라핀처럼 ‘명랑한 낙관주의자’의 범위에 속하는 챔피언이 이미 여럿 있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잔디밭의 느낌이나 바다 내음처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 세상 모든 것에 감탄하는 챔피언을 살펴본 적은 아직 없습니다. 너무 평범해서 우리가 보통 간과하는 것을 놀라워하는 챔피언이요”라고 말합니다.
그웬의 초기 컨셉 아트를 담당한 폴 “Zeronis” 권 님은 이러한 방향을 기반으로 삶의 무궁무진한 기쁨을 이해할 법한 캐릭터들을 그려봤습니다. 그중 모든 팀원의 눈에 띈 컨셉 아트가 있었는데, 바로 인형의 컨셉이었습니다.
SkiptoMyLuo 님은 “그웬은 인형 시절을 일부 기억합니다. 그런데 과거 눈으로만 볼 수 있던 것을 이제 드디어 오감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서사 팀에서는 그웬이 난생처음 놀이공원에 놀러 간 사람 같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즐거움과 신바람으로 넘쳐흐르며 솜사탕 먹기, 롤러코스터 타기, 게임 하기 등 뭐든지 하고 싶어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게 정말, 정말 놀랍고 어떻게든 전부 경험해야만 한다는 느낌이 들겠죠”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웬의 출신 지역이라는 문제가 남아있었습니다. Zeronis 님의 컨셉 아트에는 천사 같은 얼굴에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소녀가 등장하는데 이는 룬테라와 이질감이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웬의 이야기는 어떻게 될까요? 그리고 리그 오브 레전드와 동떨어졌다는 느낌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행히 그즈음 비에고가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습니다...
비에고의 소중한 아내 이졸데는 카마보르에 정복당한 땅 출신입니다. 소작농의 딸인 이졸데는 평범한 취미를 즐겼으며 바느질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동년배의 어린아이들이 대개 그렇듯 바다를 건너가 왕국의 호화로운 궁전을 구경하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졸데는 상상 놀이로라도 그렇게 해보고 싶어서 왕실의 우아함을 그리며 공주 인형 그웬을 만들었습니다.
컨셉 아트 리드 젬 “Lonewingy” 림 님은 “카마보르의 문화에는 정복 시대의 스페인과 빅토리아 시대 영국 문화가 섞여 있습니다. 바로크풍이 강하고 장식과 섬세함을 강조한 양식이 흔했던 시대죠. 인형과 인간 모습의 그웬에 이를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현대적인 느낌을 줄이고 하이 판타지 룬테라 느낌을 더하기 위해 카마보르에서 볼 수 있는 모양을 활용했습니다. 그웬의 브로치에 있는 소용돌이와 삼각 모양 장식은 비에고의 옷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왕실의 복식을 따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어린 소녀의 솜씨로 보일 만큼은 다릅니다”라고 말합니다.
첨단의 무기
모든 챔피언은 힘의 원천을 부각하며 알아보기 쉬운 윤곽을 지녀야 합니다. 세나에게는 거대한 총, 다리우스에게는 도끼, 소나에게는 정말 멋진 키보드 에트왈이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 컨셉 아트를 그릴 때 Zeronis 님은 그웬에게 무지막지한 가위를 주었습니다. 왠지 심금을 자르는 울리는 요소여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Lonewingy 님은 “그웬은 천여 년 전부터 있었지만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 분류상 그림자 군도 출신 챔피언이기 때문에 그림자 군도와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래서 그웬의 가위에 사악한 분위기를 가미하는 데 중점을 두었는데... 가위의 작동 원리가 정말 복잡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가위가 얼마나 천재적인 발명인지 처음 알았어요!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방식으로 올바르게 여닫히는 가위를 만들기 위해 가위 연구에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Lonewingy 님은 결국 카마보르의 정교한 세공을 부각하면서 그림자 군도 챔피언에게 어울릴 만한 가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웬의 가위를 완성하려면 아직 음향 효과라는 관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가위의 음향 효과를 만들기란 쉽지 않습니다. 가위 소리는 특별히 크지 않고 싹둑거리며 솔직히 약간... 지루하죠. ‘정말 재미있고 박진감 넘치는 챔피언이니 플레이해보세요’라는 느낌과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사운드 디자이너 오스카 “Riot Zabu” 코엔 님은 생기발랄한 인형 그웬이 휘두르는 가위에 걸맞은 소리를 만들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Riot Zabu 님은 “사실 그웬의 가위 음향 효과를 만들 때 싸구려 가위를 여러 개 사용했어요. 제 작업 방식은 매우... 독특합니다. 수작업과 무턱대고 하는 시도가 많죠. 덕분에 오디오 복원 툴에 정말 익숙해졌는데 이번에 그웬 작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복원 툴을 이상하게 활용해 만든 독특한 소리로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음향 효과를 제작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웬의 가위 음향 효과 최종본
바늘에 실 꿰기
그렇게 인형이었지만 사람이 되어 가위를 휘두르는 생기발랄한 그웬이 완성되어갔습니다. 하지만 아직 무언가 부족했습니다... 전투형 암살자 게임플레이를 기획할 차례였습니다. 약간 중요한 부분이죠.
전투형 암살자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1대1 붙자’ 사고방식의 화신입니다. 주요 표적과 맞붙은 뒤 하던 일(아군 정글러의 칼날부리를 빼앗는 등)을 계속하기 위해 빠져나가려고 하는 역할군입니다. 표적을 덮쳤다가 나머지 적군의 집중 공격을 받는 상황은 피하고자 하죠. 따라서 사냥감을 고립시키거나 자신이 원하는 전투를 골라서 할 수 있으면 도움이 됩니다.
완벽한 1대9 전투를 끊임없이 추구하는 전투형 암살자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챔피언이 뛰어난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웬 기획을 시작했을 때 팀은 이미 생각해둔 스킬이 있었습니다.
챔피언 기획자 댄 “Riot Maxw3ll” 에먼스 님은 “저는 사실 다른 팀원들이 작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웬의 영역 장악 스킬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생기발랄한 전투형 암살자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전이었어요. 그웬이 구체화되기 시작하자 팀은 성격에 잘 어울린다는 이유로 그 스킬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어 했습니다. 마치 그웬이 ‘나에겐 재미있는 도구가 다 있는데 너에겐 없지’라고 말하는 듯한 스킬이었습니다. 적은 그웬이 정한 규칙을 따라야 했죠”라고 말합니다.
다만 적이 단순히 그웬의 영역을 떠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적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에서 싸우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그웬의 영역 장악 스킬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 영역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팀은 적이 실제로 그웬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도록 할 수단을 그웬에게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게임 기획자 스태쉬 “Riot Stashu” 첼럭 님은 “그웬의 게임플레이 기획을 맡았을 때 상대가 그웬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온갖 엄청난 궁극기를 살펴봤습니다. 그웬의 궁극기는 항상 바늘과 실을 테마로 했으니 바늘과 실로 적을 다시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는 궁극기를 만들었습니다. 그웬으로 플레이할 때 상대의 팀원이 전혀 못 도와주는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바늘로 적 2명을 꿰뚫은 뒤 서로 위치를 바꾸게 하는 궁극기도 만들어봤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웬은 전투형 암살자로 기획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히는 캐리형 챔피언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챔피언에게 군중 제어기까지 주면 지나치게 강력한 챔피언이 탄생합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모든 챔피언에게는 ‘위력 예산’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군중 제어기, 팀을 위한 지원형 스킬, 피해량 등이 포함됩니다. 그웬의 궁극기에 강력한 군중 제어 효과가 있으면 그 대신 피해량이 낮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면 1대9를 꿈꾸는 전투형 암살자 플레이어의 관심이 시들해질 테니 적을 그웬의 영역 안에 가두는 방법에 대해 더 나은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해결책으로 그웬이 영역을 한 번 움직여 도망가려는 적을 추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달리 말해... 그웬의 영역에 바퀴가 달렸습니다.
마무리 매듭짓기
그웬은 처음에 이상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웬은 오래전 멸망한 제국인 카마보르와 그웬의 흥미를 자극하는 낯선 세계인 룬테라 사이에 끼어 있으니 그럴 만도 하죠. 하지만 여전히 친숙한 분위기, 영원히 변치 않는 편안함을 풍길 겁니다.
그웬을 보면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에 대한 추억이나 가로등이 켜질 때까지 놀았던 기억 혹은 훗날 어떠한 사람이 되겠다는 어릴 적의 꿈이 생각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적어도 명랑한 신규 챔피언으로 거침없이 진격할 기회를 누리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