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소의 힘을 끌어내다
오늘은 소환사의 협곡이 완전히 뒤집히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0분만 투자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소환사의 협곡이 어떻게 기획자의 악몽으로 변하게 되었는지 확인하실 수 있죠.
… 농담입니다. 실은 반만 농담입니다.
프리시즌은 보통 문제가 있는 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필요한 대규모 변경사항을 적용하기에 좋은 시기입니다. 하지만 2019년이 시작될 무렵 소환사의 협곡 팀은 게임이 제법 괜찮은 상태에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었죠. ‘리그 오브 레전드 10주년도 앞두고 있는데 두 번째 10년의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해주면서 플레이어가 새로 터득해야 할 요소를 과도하게 추가하지 않는 변경사항은 없을까?’
이 정도 규모의 변경사항은 많은 사람의 협업이 있어야만 제대로 구현할 수 있습니다. 게임 기획자부터 아티스트, 사운드 디자이너, 플레이테스터… 그리고 플레이어 여러분까지 각자의 역할이 있습니다.
너무 앞서 나가 버렸네요.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죠.
선취점 수풀과 아기 드래곤, 협곡을 누비는 내셔 남작까지
리그 오브 레전드 경기가 펼쳐지는 맵은 지난 10년 동안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맵은 3개의 공격로, 정글, 내셔 남작 둥지, 드래곤 둥지, 2개의 기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0분이 되면 내셔 남작이 생성되고 드래곤이 몇 차례 나타나면 우세한 정글러가 처치하죠. 맵 방면에서 게임별로 달라지는 점이라고는 다음으로 생성되는 드래곤의 원소였지만, 이마저도 따지고 보면 플레이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습니다. 소환사의 협곡에 대규모 변경사항이 마지막으로 적용된 지 수 년이 지났기 때문에 비슷한 유형과 규모의 작업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건 팀에게 설레는 일이었죠.
2019년 초 소환사의 협곡 팀은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협곡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브레인스토밍을 했습니다. 소환사의 협곡 팀은 밸런스부터 프리시즌까지, 소환사의 협곡을 위한 모든 변경사항을 담당하는 개발자로 이루어진 팀이죠. 그 시점에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었습니다. 게임을 매번 독특하게 해주면서 기존 요소를 완전히 바꾸지만 않으면 어떤 아이디어든지 살펴보았죠.
선임 개발 매니저 올리비에 “Riot Kazdoo” 제드는 “게임 기획에서 브레인스토밍 단계는 무엇이 좋은지 찾아내는 단계가 아닙니다. 무엇이 나쁘고 잘 안되는지 빠르게 알아보는 데 집중해야 하죠. 나쁜 아이디어는 빠르게 제외하고자 합니다. 그다음에는 좋았던 아이디어로 돌아가서 왜 좋았는지 살펴보죠”라고 말합니다.
팀에서 제외한 아이디어를 몇 가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게임 기획자 대니얼 “Riot Rovient” 리버는 “선취점을 개선하자는 아이디어가 있었어요. 챔피언이 사망한 위치에 수풀이 생성되는 아이디어였죠. 하지만 그러면 조금 희한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아군 포탑 밑에서 사망하면 미니언을 안전하게 처치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수풀이 생기는 셈이었습니다. 상대방은 매우 곤란해졌죠”라고 말합니다.
초기에는 포탑을 철거하면 벽을 파괴할 수 있게 되는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억제기가 파괴되면 기지가 수풀로 뒤덮이는 아이디어도 고려해봤죠. 이러한 아이디어는 팀의 목표에 일부 부합했으나 맵을 너무 혼잡하게 만들고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이는 팀에서 피하고자 했던 결과였죠.
팀은 기존의 몬스터를 상대하는 새로운 방법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조그마한 (혹은 게임을 뒤집을 정도로 엄청난) 이로운 효과를 부여해주는 아기 드래곤을 만들어보기도 했습니다. 내셔 남작의 이로운 효과를 지닌 챔피언이 처치된 정글 캠프의 몬스터를 ‘징집’해 언데드 군대를 거느릴 수 있게 하는 방안도 살펴봤습니다. 심지어 내셔 남작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면 둥지에서 나와 싸움을 찾아다니는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마치 ‘나와 맞붙을 시간이다! 이제 맵 전체가 내 둥지다!’라고 소리치는 듯했죠.
리드 게임플레이 기획자 마크 “Riot Scruffy” 예터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사람이 아닌 상대와 싸울 때는 상대를 완전히 압도할 수 있어야만 재미있다는 점이 문제였습니다. 게임의 핵심은 플레이어 간 대전이기 때문에 몬스터를 징집하는 아이디어는 큰 매력이 없었죠“라고 말합니다.
여러 아이디어를 살펴보았지만, 결국에는 드래곤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드래곤이 정답이라는 느낌이 들었죠. 드래곤은 이미 리그 오브 레전드에 존재하는 요소였습니다. 드래곤의 역할도 플레이어에게 친숙했습니다. 게다가 당시에는 원소 드래곤의 이로운 효과가 딱히 신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드래곤을 활용하면 처음에 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제외한 아이디어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 요소는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접근법을 통해 지형 변화와 PVE 요소를 결합한 아이디어에 도달하고 원소의 협곡 업데이트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맵이 수시로 바뀌지도 않고, 상대하기 너무 쉬운 몬스터와 싸워야 하지도 않고, 새로 터득해야 할 요소도 많지 않았습니다. 즉, 게임을 완전히 뒤바꾸지 않는 변경사항이었죠. 챌린저를 향한 여정에서 기본을 다시 배울 시간 따위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새로운 맵을 대거로 만들기 전에 우선 팀이 제정신인지를 확인해야 했습니다. ‘게임플레이에 각각 다른 영향을 주는 소환사의 협곡이 네 가지나? 플레이어분들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겠지? … 그렇겠지?’
플레이어들이 나설 차례
올리비에는 “게임 기획자는 자신이 한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좋게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면 거기에 완전히 빠져들게 되죠. 아이디어 하나를 추구하기 시작하면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소환사의 협곡 팀은 작은 팀입니다. 10명이 안 되는 게임 기획자와 엔지니어 몇 명, 개발 매니저 한 명에 기타 업무를 담당하는 몇 명이 전부입니다. 무언가 문제가 있으면 말씀해주실 수백만 명의 플레이어 여러분에 비하면 새 발의 피죠. 시각과 음향 효과에 공을 들이기에 앞서 추구하는 아이디어가 실제로 가치가 있는지 확신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변경사항을 플레이테스트 팀에 보냈습니다. 플레이테스트 팀은 상위 다이아몬드부터 챌린저까지의 플레이어 10명 정도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획자와 함께 변경사항이 목표에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일을 합니다. 변경사항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최선의 방법은 보통… 게임을 많이 해보는 겁니다. 게다가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소환사의 협곡을 통째로 바꾸는 변경사항이었기 때문에 플레이테스트는 특히 더 중요했습니다. 상위 랭크 플레이어가 변경사항을 어떻게 활용할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플레이테스트 팀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지만, 이 역시 모두의 의견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전체 플레이어의 5%도 안 되는 집단이기 때문이죠. 사실 0%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환사의 협곡 팀은 그때 실제 플레이어를 모시기로 했죠.
4월에는 다양한 랭크와 역할군의 플레이어가 라이엇에 와서 계속 진화하는 소환사의 협곡 프리시즌 변경사항을 테스트해 보셨습니다.
대니얼은 “저희가 피드백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피드백은 큰 도움이 되거든요. 기능을 도입할지 긴가민가할 때는 플레이어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하죠”라고 말합니다.
긴가민가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플레이어와 함께하는 피드백 시간은 중요합니다. 새로운 게임플레이 변경사항의 플레이테스트 결과가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면 즉시 도입을 중단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프리시즌 변경사항은 규모가 매우 컸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확실히 하고 싶었죠.
그리고 플레이테스트의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었습니다!
억제기가 파괴되면 기지가 수풀로 뒤덮이는 변경사항 (이는 짜증만 유발하는 결과를 낳았죠) 등 일부 아이디어는 통과되지 않았습니다. 틈새처럼 약간의 수정이 필요한 변경사항도 있었죠. 하지만 원소의 협곡 업데이트의 핵심 테마와 방향이 마음에 든다는 피드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플레이어 여러분의 승인을 받았으니 이제 맵에 생명을 불어넣을 차례였습니다.
‘수풀의 꽃’ 찾기
대니 H. “Riot Danky” 김은 “새로운 맵을 네 개나 만들기란 아트 팀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팀이 몇 년 전 소환사의 협곡을 업데이트했을 때도 엄청난 노력이 들어갔어요. 그때는 대규모 아트 팀이 2년에 걸쳐 완성했지만, 그렇다고 이번에 팀원 40명과 작업 시간 8년이 배정되지는 않았어요”라고 말합니다.
11명으로 이루어진 아트 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사실 약 4개월뿐이었습니다.
대니는 “이러한 일정 때문에 일을 똑똑하게 해야 했죠. 각 맵이 다르게 느껴지도록 해주는 작은 변화를 찾아야 했어요”라고 설명합니다.
마크는 “아트 팀은 일찍이 각 맵에 독특함과 생동감을 더해주는 기발한 모델링 관련 변경사항을 발견했어요. 컨셉 아티스트 한 명이 바다의 협곡에 있는 수풀에 꽃을 추가했는데, 그게 이후 모든 작업에 큰 영감이 되어주었습니다. ‘이 원소에서 수풀의 꽃이 되어줄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죠”라고 말합니다.
벽이 무너지고 수풀은 불에 타게 되는 (게다가 빨간색인) 화염의 협곡이 완성하기 제일 쉬웠습니다. 새로운 암벽이 솟아나는 대지의 협곡도 직관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죠. 바다의 협곡은 정글이 물에 잠기고 수풀에 꽃이 피어나는 효과로 독특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바람의 협곡은…
바람의 협곡에 드리워진 먹구름
대니는 “바람의 협곡은 게임플레이 요소가 많았기 때문에 가장 어려웠어요. 게임플레이를 이해하기 쉽게 하는 게 최우선이었는데 시각 요소를 너무 많이 추가하면 게임플레이 방면에서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지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었죠”라고 말합니다.
팀은 바람의 협곡이 더욱더… 바람 같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정글에 위치한 이동 속도 상승 기류와 비슷한 반투명 균열을 맵 곳곳에 배치해봤습니다. 하지만 구역의 크기가 커서 의도와는 반대로 스킬에 맞을 가능성이 오히려 올라갔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이 기피했죠.
맵에 안개가 낀 듯한 효과도 시도해봤지만, 그러면 전장의 안개와 이동 속도 상승 구역 모두 잘 안 보이게 되었습니다.
대니얼은 “게임플레이 방면에서 바람의 협곡은 정말 흥미로워요. 상대를 제압하거나 스킬샷을 회피할 기회가 많아지기 때문이죠. 이러한 요소는 팀 전투를 완전히 뒤집을 수도 있어요. 다만 다른 원소처럼 맵의 일관성을 높여주는 무언가를 못 찾아서 아쉬웠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아직 있어요. 계속 이것저것 추가할 생각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아트 팀이 마무리 작업까지 완료했는데도 소환사의 협곡은 여전히 너무…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적막의 공허를 채우기 위해 음향 팀을 찾았습니다.
6가지의 빗소리와 돼지 울음소리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묵직한 천둥소리와 어우러진 창밖의 빗소리를 듣고 있자면 특별한 감정이 피어오릅니다.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소리죠. 리드 사운드 디자이너 브랜든 “Riot Sound Bear” 리더는 딱 이러한 느낌을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브랜든은 “빗소리는 정말 시끄러워요. 빗방울이 수없이 쏟아져 내리면 그냥… 소음이죠. 활용할 수 있는 빗소리 녹음 파일이 여러 개 있어서 하나하나 살펴보며 마음에 드는 소리를 찾았어요. 빗소리 6개를 결합한 뒤 약간의 편집을 거쳐 바다의 협곡을 위한 최종 빗소리에 도달하게 되었죠”라고 말합니다.
대지의 협곡은 암석이 요동치는 우렁찬 소리로 메워지며, 바람의 협곡에서는 바람이 속삭이는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화염의 협곡은 불꽃이 튀는 소리로 타오릅니다. 마침내 4개의 맵이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할 일이 아직 남아있었죠.
소환사의 협곡이 네 번의 꽃단장을 하는 동안 게임 기획자들은 업데이트의 마지막 부분인 장로 드래곤을 손보고 있었습니다. 게임 후반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미천한 친척들에게 밀리면 안 되기 때문에 장로 드래곤을 처치하면 게임을 끝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처형 능력을 받도록 했죠.
대니얼은 “끝 무렵의 플레이테스트 중 브랜든 님이 저희 팀에게 장로 드래곤 처형 효과가 발동될 때 나는 소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봤어요. 저희는 사실 딱히 드는 생각이 없어서 할 말이 별로 없었죠”라고 말합니다.
브랜든은 “원래는 일반적인 레이저 소리에 유기적이지만 강렬한 필터를 적용한 소리였어요. 그런데 톡 튀는 느낌이 부족했죠.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면서 약간… 광기를 발휘해봤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브랜든은 자신이 괴성을 지르는 소리와 돼지가 꽥꽥 우는 소리를 믹싱해 최종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잘못 읽으신 게 아닙니다. 돼지라고 했습니다.
브랜든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공룡이나 오크 등 현존하지 않는 생물의 소리는 대부분 여러 동물의 소리를 혼합해 만든 것입니다. 동물 중에서도 돼지는 자주 활용되는 편입니다. 돼지가 꿀꿀거리고 꽥꽥거리는 소리는 사운드 디자인에 매우 적합하죠. 돼지를 고른 이유는 전투 중 다양한 주파수의 소리가 울리는 와중에도 잘 들리는 소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소리가 좋을지 고민하게 되었는데요. 해답은 돼지와… 저였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돼지의 도움으로 장로 드래곤이 완성되며 음향 효과도 마무리할 수 있었죠. 그리고…
팀은 결과물을 살펴봤습니다. 드디어 정말로 완성된 모습이었죠. 프리시즌의 정취를 느끼며 갱킹하고 로밍할 수 있는 새로운 소환사의 협곡이 완성된 모습이었습니다.